요한계시록 | Revelations

2004/09/24 (23:57) from 211.111.57.5' of 211.111.57.5' Article Number : 24
Delete Modify 김충만 (thesermon@thesermon.org) Access : 1266 , Lines : 57
040924 | 마지막 재앙[1]_대접1-5(16:1-11)
2004/09/24



 본문 관찰

 일곱 대접(15:5-16:21)
   첫째(2) : 땅...악하고 독한 헌데(종기) →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
   둘째(3) : 바다가 피로 변 → 모든 생물이 죽더라
   셋째(4-7) : 강과 수원이 피가 됨(+둘째) → 피 흘리게 한 대가
   넷째(8-9) : 해로 태움 → 하나님의 이름 훼방, 회개치 않음
   다섯째(10-11) : 흑암과 아픈 고통(+넷째) → 회개치 않음


  
첫째에서 다섯째까지

일곱 나팔 재앙(8:6- )이 한층 심화되면서 재앙의 끝을 알린다.
역시 땅/바다/강/해/흑암으로 이어지는 재앙(대접1-5)은 ‘마른 강물’(대접6)을 통해 ‘큰 지진’(대접7)에 따른 완전한 파멸로 그 끝이 나게 된다.  이로써 일곱 나팔을 통해 시작된 1/3이라는 부분적 심판(멸망)은 마침내 전체가 다 멸하게 되는 쪽으로 흘러간다.  하나님의 계속적인 심판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행위를 회개하기는커녕 여전히 땅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2,9,11,21),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기에 여념이 없다(9,11).  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 아닌가.



점차 진전되는 심판

땅과 바다, 강과 태양까지 천지(天地)와 만물(萬物)이 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꺼꾸러진다.  그리하여 세상은 온통 어두운 흑암과 고통 가운데 있다(10-11).  마치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기(열째 재앙과 유월절)에 앞서 애굽 온 땅이 흑암 재앙이라는 아홉번째 재앙(출10:21- )을 당하고 있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은 ‘짐승의 보좌(나라)’를 향하고 있다(10).  

한편 일곱 나팔(6:6- ) 재앙의 패턴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전자(前者)는 부분적인 재앙(삼분의 일)이었고, 후자(後者)는 심판의 강도나 범위 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쳐지는 마지막 재앙이기 때문일 것이다(1).  하나님의 심판(재앙)이 이처럼 시작되어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그 죄악을 돌이키는 일에 실패하고 있고,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향해 점점 강화되고 확장되는 심판으로 응징하신다.  

생각해 보면 애굽이 그랬다.  재앙이 하나에서 열까지 점차 확장되면서 진행되는 동안에도 저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심판의 강도는 진전되었다.  만물이 다 죄악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슬피 울고 있는데 어찌된 게 땅에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그저 심판을 당하고 있는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참으로 무수한 예고와 경고가 있었건만 ….



심판에도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왜 세상(땅에 있는 자들)은 마지막 재앙(하나님의 진노)이라는 심판 앞에 서 있는가.  이것은 불공정한 것인가.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이런 모습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한 것에 대해 물의 천사는 이렇게 말한다 : “전에도 계시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5, 7 참조)  그럼 무엇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심판의 이유인가.

먼저 심판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2b, 13장)을 겨냥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12:17)인 성도들, 즉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13:6)과 반대편에 있다.  그러니까 ‘땅과 바다’(12:12b, 13:1,11)에서 올라온 용(옛뱀, 마귀, 사단)의 하수인들인 짐승들의 편에 선 자들이다.   

둘째로, 심판의 이유는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6a)기 때문이다(마23:34-35 참조).  또한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9, 11 참조)였으니, 이로써 마귀(2)는 물론이고 사람(6a)을 넘어 마침내 하나님(9,11)까지 모독하는 삶을 살았으니 최종적인 하나님의 진노가 저들 위에 임하게 된 것은 당연하지 싶다.



부스러기 묵상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b-8)

심판받기에 합당한 자들은 누구인가?
사단에게 무릎을 꿇은 자들이다(2).  그랬으니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죽이는 일이 사명이었을 것이고(6a), 마침내 하나님을 향해 회개하기는커녕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대립각’을 세우면서까지 대항하며 자멸하기를 재촉했을 것이다(9,11).  이게 다 ‘큰 용’(옛뱀, 마귀, 사단)이 저지른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들의 결과다(12-13장).  이들은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이다(14:6-20).  이것이 15장부터 소개되고 있는 마지막 재앙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다.

한 가지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붉은 용’(12:3)인 사단의 속임수에 놀아난 사람들의 회개치 않음이지만, 그러나 이들의 행위에 따른 심판받기(심판하기)는 사단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2,9,11).  물론 사단도 결국 ‘여자의 후손’에게 멸망을 당하지만(20:7-10, 창3:15 참조),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자들 역시 결코 저들의 죄가 면죄되거나 심판이 취소되는 일은 없다.  이게 다 심음과 거둠의 법칙이다(갈6:7-8)

한편 이것은 요한의 첫 독자들에게는 하나의 경고다.  물론 요한의 독자들로부터 오늘 이 말씀을 읽고 듣는 자들에게까지 여전히 유효한 아직 성취되지 않았으나 이미 예고된 경고다.  최후의 심판(20:11-15)에 앞서 증거하고 있는 마지막 재앙에 대한 예고편은, 그렇다면 심판 메시지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의 외침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땅에서의 족적(record)이 저 땅에서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10: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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