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초대석 | 말씀묵상에 초대합니다.

2004/05/11 (20:33) from 210.105.79.27' of 210.105.79.27' Article Number : 325
Delete Modify 김봉수 (kbossnovera@hotmail.com) Access : 1348 , Lines : 46
[하나님을 아는 지식] 중에서


성령님을 우리의 인도자로 존중하는 참된 방법은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수단인 성경을 존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형성하기 위해 주시는 기본적인 인도 -즉 우리가 그것에 따라 살아야 하는 기본적인 확신들, 태도들, 이상들, 가치 판단들을 가르치시는 것-  는 하나님의 별개인 어떤 내적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안에 있는 그 분의 성품과 뜻을 올바로 인식하도록 우리 양심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이때 성령님은 우리가 그 분의 성품과 뜻을 이해하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도록 하신다.

내적 기호는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초월해서가 아니라 그 말씀이 정하는 한계안에서 인도하신다. "그가...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3). 하나님은 다른 어떤 길로도 인도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도에 대해 올바른 개념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잘못되기가 쉽다. 특히 소명적인 선택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몇가지 중요한 함정들을 열거해 본다.


첫째, 생각하기를 내켜하지 않음.

어떤 합리적 근거도 없는 내적 느낌을 요구하며 '생각하라'는 끊임없는 성경의 끊임없는 권고를 무시하는 것은 불건전하고 유해한 종류의 거짓경건, 초자연주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는 존재로 만드셨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안에서 매사를 잘 생각해 볼때 우리의 지성을 인도하신다.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신32:29)


둘째로, 미리 생각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음.

서로 다른 행동경로의 장기적인 결과를 생각하지 않음. '미리 생각하라'는 것은 길을 갈 때 인간이 지켜야 하는 규칙인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규칙이다. 종종 우리는 어떤 일이 장기적으로 가져오는 문제들을 곰곰이 생각해 볼때에만 무엇이 지혜롭고 옳은 것인지(그리고 무엇이 어리석고 잘못된 것인지)깨닭을 수 있다.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신32:29).


셋째로, 충고 받는 것을 내켜하지 않음

성경은 충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12:25). 중요한 결정들을 내릴 때 조언을 받지 않고 내리는 것은 자만과 미성숙의 표시이다. 성경과 인간의 성품과 우리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들의 조언을 완전히 받아 들일수 없다 할지라도, 그들이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검토해보면 우리에게 유익이 있다.


넷째로,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음.

우리는 우리자신을 도대체 잘 모른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을 잘 알아챌 수 있지만 자신안에 있는 그런 성향은 간과해 버린다. 자아를 부추기거나 도피주의적이거나 방종하거나 자기를 과장하는 것과 관계된 '느낌들' 을 하나님의 인도로 잘못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런 느낌들을 간파하여 믿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는 성적인 느낌들이나 성적으로 좌우되는 느낌들의 경우에 특히 더욱 그렇다. 한 생물학자이자 신학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종종(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랑에 빠진' 것에 수반되는 기쁨과 일반적인 행복한 감정은 쉽사리 양심을 침묵시키고 비판적 사고를 억제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이 사람들이 결혼하도록 이끌림받는 것을 느낀다'고(아마도 그들은 '주님이 아주 분명히 인도해 주셨다' 고 말할 것이다) 말하는가! 하지만 사실상 그들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호르몬의 신비로운 균형상태로서 이것이 그들을 극도로 쾌활하고 행복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왜 우리가 어떤 특정한 행동을 옳다고 '느끼는지' 물어 보아야 하며,  스스로 그  이유들을 대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어떤 다른 사람에게 그 이유들을 말해 그것들을 판단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가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24). 우리 자신을 아무리 불신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섯째로, 개인적 호감을 억제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음.

자신의 교만과 자기 기만을 깊이 인식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것들이 있음을 간파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때로 선의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그럴 듯하게 설명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기만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정신과 양심을 놀랄만큼 지배할 수 있다.  이들은 그들에게 홀려서 통상적인 기준으로 그들을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재능 있고 매력적인 어떤 사람이 그 위험을 알고 그것을 피하려 애쓴다 해도,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을 중단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에게 이끌림을 받는 것이 아니다.  실로 탁월한 사람들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반드시 옳은 것 또한 아니다!그들과 그들의 견해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우상화 되어서는 안된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살전5:21)


여섯째로, 기다리는 것을 내켜하지 않음

"여호와를 기다리라" 는 것은 시편에 계속해서 나오는 후렴구이며 , 필요한 말이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로 하여금 기다리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서두르지 않으신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행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미래에 대해 알려 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행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미래가 대해 알 주신다거나, 한번에 한걸음 이상을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의심이 가거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기다리라. 행동이 필요할 때면, 그것에 대해 알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제임스 패커 지음)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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