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 2 Peter

2011/04/06 (23:03) from 180.66.97.187' of 180.66.97.187' Article Number : 1
Delete Modify 김충만 (cmkim@sarang.org) Access : 563 , Lines : 86
심비묵상(3.26)_사람 vs 하나님(베드로후서 1:21)
심비묵상(心碑默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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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vs 하나님(베드로후서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베드로후서 1:21)

      [구조]
      A_사람의 뜻으로 낸 것
      B_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

  오늘 말씀은 “예언은 A가 아니고 B이다.”는 내용으로 관찰해 볼 수 있다.
  이를 다시 B에 중심을 두고 정리해 보면,
  먼저 A는 예언을 하나님께 받지 않고도 된다고 하는 사람이다.
  둘째, 그럼에도 A는 그것을 예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셋째, 그렇다면 A는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넷째, A는 성령님과 전혀 무관하면서도 예언을 한다고 교회 안에 자기 목소리를 높인다.
  이쯤 되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예언인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셈이다.

  문제는 더 있다.
  이단이 결코 자신이 이단이라 말하지 않듯이 A-style이 예언이다는 사람은
  자신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으로서의 예언이 아니다고 확신한다.
  여기에는 단 한명의 예외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예언은 하나님께 받아 말하는 것이며,
  자신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이를 위해 자기 경험에 기초한 종교적인 현상들을 증거로 제시한다.
  그래서 명함에도 <40일 금식기도 3회 실시>라고 인쇄를 해서
  겸손하게 그것을 내미는 것 같지만 교만을 슬쩍 위장된 겸손 뒤에 숨기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소위 영적 혼란의 악순환 싸이클이다.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보다 종교성이 높아 보이거나,
  자신에게 없는 종교적인 경험들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가 좀 죽는 편이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서 성경도 많이 알고,
  말투나 표정이 좀 거룩해 보이고,
  또한 이름만 들어도 알만 한 교회의 직분자라면,
  혹은 그가 목회자일 경우에 정통교단의 신학교를 졸업한 자라고 하면
  그야말로 한 수 접고 들어가 너무도 쉽게 머리를 숙여 안수를 받고,
  가정제단이라는 곳에 출입하면서
  (가정집인데 들어가면 입구에 헌금함이 있고,
  방에 전면에 십자가를 걸어 놓고,
  앉아서 할 수 있는 강대상이 놓여 있고... 등등)
  소위 은사자들이라는 무리를
  마치 하나님 대하듯 하는 경우가 이젠 비밀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이것은 다 기독교와 예수님을 팔아먹는 도적들이다.
  지금 베드로 사도가 자신의 서신에서 말하고자 하는 “예언”은
  공적 예배와 관련되어 있는 주제이고,
  오늘로 이야기하면 포괄적으로 ‘설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A-Style 예언을 가리켜 사도는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라 단언(선언)한다.
  하나님과 성령과,
  하나님으로부터와 성령님으로부터 전혀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결국 자기 배를 채우고,
  이기적인 욕망과 욕정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까지를 도용해서 장사를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나는 이 말씀과 무관한가?
  나는 베드로 사도의 코멘트에 자유한가?
  새벽부터 아침 이 시간까지 무시로 이 말씀을 되새김질하며 묵상 앞에 앉아있다.
  정리하면 아무나,
  어느 경우에나,
  어떤 상황에서나 오늘 사도의 말씀을 도용(차용)해서
  “지금 내가 하는 이 말은 예언적 계시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직통계시>는 없다.
  만일 그렇지 않고 계시와 예언을 앞서 오해한 자들처럼 이해하면
  성경이 지금도 쓰여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왜냐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예언자에게 생생한 하나님의 계시적 예언을 하고 있다고 말하니까.
  이게 이단들이요,
  저주를 받을 다른 복음이 아닌가(갈 1:6-10 참조).

  하나님은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도록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고,
  그래서 성령으로 말하고,
  성경을 통해서 말하게 하시는 은혜 안에 있음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이 영적 스텐스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66권을
  읽고,
  듣고,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행하는 삶이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오늘도 "이 예언의 말씀"(계 1:3a)을 묵상하는 이유다.
  성경 66권 밖에 있어 전혀 성경과 무관한 A는 그래서 B가 아니다.
  성경 66권만이 B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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