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 Romans

2000/11/01 (09:21) from 211.59.153.26' of 211.59.153.26' Article Number : 53
Delete Modify 김충만 (thesermon@thesermon.org) Access : 4450 , Lines : 65
롬16:1-16 | 바울 곁의 사람들



본문 관찰

  1 나는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한다.
      -그녀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다.
  2   -너희는 성도의 사랑으로 주 안에서 그녀를 정중하게 맞아들이라.
      -무슨 일이든지 그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아낌없이 도와주라.
      -그녀는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다.
      -나는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3 주님을 위해 나와 함께 일하는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나를 위해 자기들의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나와 이방인의 모든 교회가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5   -그들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베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에게 돌아온 성도다.
  6 너희에게 많은 수고를 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너의 친척이며 나와 함께 감옥에 갇혔었다.
      -사도들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이다.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다.
 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한다.



동 역 자

바울은 26명의 이름을 부르며 문안한다.
또한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모이는 교회(5), 아리스도불로(10), 그리고 아순그리도에서 올름바까지 그들과 함께 있는 여러 모든 성도(14-15)를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다.  로마교회는 바울이 세운 것도 아니고, 아직 로마에 간 적이 없다는 점에서 어떻게 이처럼 많은 성도들을 알고 있는지 흥미롭다.  아마도 여러 전도여행을 통해서 만났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1:9b)에서처럼 영적으로 그들과 교통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문안이다.  



뵈뵈(1-2)

바울은 로마서를 우리 자매 뵈뵈를 통해 로마교회에 전달한다.  그녀는 고린도의 항구도시인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1, minister)이었다.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는, 초대교회의 영적 교제다(2a).  주 안에서 정중하게 맞이할 뿐 아니라 -로마는 그녀를 아직 만나 본 적이 없다- 무엇이든지 그녀의 필요를 아낌없이 나눌 수 있다는 공교회의 공동체성을 주목해 본다.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공통분모만 있으면 서로 형제됨의 교제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교회의 유연성과 수용성을 현대교회는 초대(로마)교회라는 박물관에서나 만나게 된다는 게 영 그렇다.

둘째는, 그녀의 됨됨이다(2b).  이를 통해 하나님은 누구를 쓰시는가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어제를 어떻게 살고 있었느냐가 중요하다.  그 어제가 오늘이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오늘(현재)은 언제나 그의 어제(과거)를 반영한다.  그래서 오늘이 내일(미래)이라는 사역(사명, mission)을 이룬다.  뵈뵈에게서 역시 이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바울도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녀는 바울의 보호자(도움, 원조자, 후원자)였다.  그녀는 아마도 자신의 물질을 교회(복음, 선교)를 위해 아낌없이 쓸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복음 곁의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한편 바울은 그녀를 자기 사람으로만 묶어두지 않는다.  로마교회를 위해 기꺼이 그녀를 드린다.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은 이곳으로, 저곳으로 끌고 다니는 우리시대의 교회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역자의 심성(mind)을 바울에게서 배운다.  사람을 따라 다니는 사람이 교회에는 많다.  교회 안의 분파주의와, 반대로 새로운 사람에 대한 배타주의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그러나 로마교회에는 이러한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복음에 건강한 공동체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법이다.



로마교회 성도들(3-15)

부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모이는 교회(5), 10,14-15절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여러 모든 성도들이라는 이처럼 다양한 소그룹이 있었음도 불구하고 로마교회는 하나다.  바울이 실명을 거론한 사람들은 모두가 다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는 칭찬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두가 다 로마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다.  여기에는 남녀노소(男女老少)와 출신지, 신분의 차이가 고려되지 않고 있다(갈3:28).

파벌(파당)에 따른 갈등이 있었던 고린도교회와는 전혀 다르다.  어떤 면에서 볼 때 로마교회는 무주공산(無主空山)과 같아 보이지만 그런데도 전혀 문제가 없다.  아마도 카톨릭에서 주장하듯이 당시 로마에 베드로가 목회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바울이 베드로에게 문안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리 없고, 개척자로서의 선교(15:20-21)를 표방한 그의 선교관은 거짓이 되고 만다.  다른 쪽으로 흐른 것 같지만 베드로는 1세기 로마교회의 감독이 아니다.  이는 로마 카톨릭이 만든 이야기다.  

로마교회는 복음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일치(연합)를 이루는 유기체로서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많아도 소리가 없는 교회, 있다면 오직 복음만 있는 교회, 이렇듯 로마교회는 매우 건강하다.  모두가 다 복음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이다.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없고 의무와 책임을 감당하는 성도들만 있을 뿐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3,7,9,10), '주 안에서'(8,11,12,13), '동역자'(3,9)로 하나된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울은 사랑하는 이들을 한결같이 격려한다(5,8,9,12).  



부스러기 묵상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한다."

위 16절의 여운이 아주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한사람 각각의 개인들에게 보여준 관심이 공동체를 품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  아직 문안해야 할 사람들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로마교회와 로마교회 밖의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공적으로 인사를 시작한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문안이다.  서로 섬기는 교회는 달라도, 서로의 신앙 배경은 달라도, 모든 성도는 하나도 이질적이지 않다.  아마도 로마교회는 바울의 편지뿐만 아니라 뵈뵈를 이처럼 맞이했을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로마가 뵈뵈를 맞아주듯, 또한 내가 맞아주어야 할 성도는 누군가?  역시 내가 계속 문안해야 할 사람들은 누군가?  격려하고, 위로하고, 세워주고, 기도해 주고, 가르쳐야 할 성도들을 가슴으로 품는다.  구역장 모임에 나가기 위해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오늘도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의 평화가 있기를!  구역 지도자들을 만나면 무슨 문안 인사를 할까?  본문은 여러모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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