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 Mark

2001/12/25 (08:22) from 211.236.201.235' of 211.236.201.235' Article Number :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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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막16:14-20 | 종의 고난에서 주의 영광으로!
2001/12/25



  본문 관찰

 지상 명령(14-18)
 승천하신 그리스도(19)
 예수님 → 제자들(20)
 


지상 명령(Great Commission)

   "예수께서 …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14)

주님은 이미 부활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아직 여기에 대한 믿음이 없다.
그런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14절이다.  문제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렇듯 [부활 '사실']은 곧바로 자동적으로 [부활 '신앙']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주께서 부활하셨다고 해서 이를 보았고 또 알았던 자들이 모두가 다 부활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하다.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에 주님을 만났던 자들만 '부활신앙'이 갖게 될 자격이 있다면 그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이 하신 말씀이 귀하다 :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  이제 이 부활의 복음은 전파될 것이다(15).  이를 통해 "믿고 … 믿지 않는 … 믿는"(16-17)이라는 새시대가 열릴 것이다.  주님은 승천하시고 이제 이 거룩한 사명은 제자들에게 맡겨졌다(19-20).  과연 인생은 어느 편에 설 건가?  '믿는 자'인가, '믿지 않는 자'인가.  하지만 결정에 대한 결과적 책임은 그 사람의 몫이다.  하늘 가는 길은 활짝 열렸다.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20) 믿는 자를 인도하실 것이다.   



지상 명령(Great Commission, 14-18)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희망은 주님께로부터 온다.  불신앙에다 완악한 마음까지 겹쳐진 제자들의 몰골이지만 주님은 끝까지 저들을 품으신다.  그리고 15절을 말씀하신다.  어디까지가 인내와 용서의 한계인가라는 질문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일까.  아무리 사고뭉치처럼 살아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금 제자들에게 복음의 희망을 불어넣으신다.  전파되는 복음을 통해서 '믿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다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구원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일이 제자들의 복음 전파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 주님은 이를 위해 사람들을 세우시고 쓰시겠다는 것, 당신의 증인된 종들을 통해서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는 것, 그리고 단지 믿음이라는 것이 입술과 마음만의 일이 아닌 분명한 증거들이라는 표적이 따르게 될 것이라는 점, 이것이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을 구분하게 할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신 참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결과적으로 세상이 흔들 수 없는 새로운 삶이 있다(17-18).



예수님 → 제자들(19-20)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주님은 종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온 몸으로 인류를 섬기셨다(1-15장).  하나님은 그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사 하늘 영광의 보좌로까지 높이셨다(16장).  낮아지신 종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높아지신 주(Lord)가 되셨다.  바울의 그리스도 영광시(빌2:5-11)와 그대로 대칭된다.  하지만 천상에 계신 주님은 계속해서 복음과 함께 살아가는 종들을 위해 "함께 역사하"(20a)신다 :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b)  

위대한 명령(15-18)은 이제 주를 따르며 "나가 두루 전파"하는 제자들에게 맡겨졌다 :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b)  제자들은 변화되었다.  결국 주님이 승리하신 것이다.  저들의 닫힌 마음과 복음을 버리고 멀리 도망갔던 불신앙의 심령을 치료한 것은 끝까지 사랑하시고(요13:1), 인내하시고, 찾아가시고, 기다려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다시 위대한 명령 앞에 저들을 세우신 주님 때문이다.  제자들은 달라졌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승천하신 주님은 이제 성령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  주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를 압축해서 기록하고 있는 19-20절은 사도행전 시대로 마가복음을 연결시켜 준다.  승천하시는 것이 끝이 아니다.  종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아버지께 복종하사 인류를 구원하신 주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약속하신 표적들이 따르게 하심으로써(17-18 → 20) 복음의 역사가 제자들만의 일이 아님을, 구원의 은총이 땅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지금 이 시간에도 하늘과 땅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전파하는 증인들을 통해서 하늘의 역사가 성취되고 있음을 잊지 않도록 격려하신다.



부스러기 묵상

땅에서는 고난을 심지만 하늘에서는 영광을 거둔다.
주님의 생애가 그러셨다(1-15장 → 16장, 빌2:5-8 → 9-11).  하나님은 주님의 고난을 이처럼 영광으로 바꾸어 주셨다.  그래서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살아가다가 만나는 고난은 귀하다.  결국은 영광이라는 열매를 거두는 씨앗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고난의 씨앗 깊숙한 곳에 영광의 비밀을 준비하고 계신다.  문제는 고난만이 싹이 나고 자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끝까지 인내하고 오래 참는 일이 생각만큼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과 함께 모리아산으로 올라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아들을 제물로 드려야 하는 고난 역시 그랬다(창세기 22장).  하나님은 이미 산 정상에서 수풀에 걸린 숫양을 미리 준비해 놓고 그를 기다리고 계셨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삭을 드리는 제사를 금하신 이후에야 아브라함의 눈에 그게 보였다.  바로 여기가 아브라함에게는 고난과 영광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하나님은 이미 영광을 준비하고 계셨지만 말이다.  고난스럽지만 그것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면 아브라함처럼, 아니 주님처럼 넉넉하게 감당하는 자에게 영광은 예비되고, 또 찾아온다.  

하지만 고난을 받는 것을 단지 영광을 얻기 위한 수단처럼 취급하는 것은 진정한 고난의 의미와 섭리와 그에 따른 영성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일 뿐이다.  고난은 단지 영광을 얻기 위한 통과의례가 아니다.  주님의 고난은 인류를 죄와 사탄의 권세로부터 해방하는 영적 전쟁이었고, 자신은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고난 당하는 종이 되셨지만 이를 통해 인류는 자유와 행복을 되찾게 하는 최고의 섬김이었다.  주께서 고난을 당하셨기에 내가 평화를 누리고, 또 나음을 입었다(사53:5).  

나의 못남과 죄와 허물 때문에 당하는 당연한 고난을 혹시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경우는 혹 없는지 모르겠다.  내가 심은 죄의 결과로 나타난 고난은 영광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이것만큼 심각한 오해는 없다.  이런 생각은 마치 놀부가 제비의 다리를 꺾고서 복을 바라는 무지와 같은 것이다.  이런 무지와 허왕된 신념이 고난을 보는 맑은 영성을 흐리게 만들고, 고난을 이겨내는 성경적 시각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하나님은 고난 받는 자를 도우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며, 복음을 위하고 타자(他者)를 위하여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 가는 자들을 이끄시며, 격려하시며,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을 당신처럼 19절의 후예들로 영광 가운데 맞이하실 것이다.  나를 주님과 복음을 위해 고난 받게 하신다면 그게 얼마나 크고 놀라운 복인가를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주께서 영광 가운데 나를 맞이하고 싶으셔서 고난의 파도를 통과해 가도록 하시는데 그걸 모르고서 불평과 불만과 불충으로 소중한 섭리의 시간들을 소비하고 있지 않도록 고난을 보는 영성을 새롭게 하자.  주님께서 19절에 이르시기까지 온 몸으로 품고 가셨던 고난의 여정이 먼저였음을 깨닫는 만큼 고난의 스펙트럼이 합력하여 선이 되는 것 같다.  선(先) 고난, 후(後) 영광을 나에게까지 따라오도록 하시니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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