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 Mark

2001/12/20 (22:32) from 211.236.201.235' of 211.236.201.235' Article Number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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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막13:1-37 | 이미 종말은 시작되었다.
2002/01/04-5



 본문 관찰

 징조들(1-8) - 예루살렘 멸망 예언
 말세 스펙트럼(9-23) - 종말 예언
 인자의 재림(24-27) - 재림 예언
 "깨어 있으라!"(28-37) - 교훈들



감람산 강화(講話)

제자들은 헤롯성전의 겉푸름만 보고서 탄성을 지른다(1).
여기서부터 [마가계시록]이랄 수 있는 마지막에 될 일들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 시작된다.  하지만 주님이 보신 것은 제자들과 달랐다.  주님은 타락한 성전의 속을 보셨다.  그리고 우셨다(눅19:41).  참 성전이 지금 서 계시지만 돌로 세워진 성전은 죄로 가득한 '강도의 굴혈(掘穴, 11:17)'로 타락한 지 이미 오래기에 주님께는 곧 무너질 심판의 대상으로 보이신 것이다(2).  다시 이어지는 제자들의 질문은 '이미'(already) 시작된 종말에 대한 경고와 예언들(9-23), 당신의 재림(24-27), 그리고 언제 이 일이 임하게 될지 알 수 없기에 "깨어 있으라!"는 교훈으로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29-37).



징조들(1-8) - 예루살렘 멸망 예언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어느 때에 …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 미혹(迷惑)케 하리라
    끝은 아직 아니니라 … 이는 재난의 시작이라."(난리, 대적, 지진, 기근)

다른 어느 것보다 먼저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 말씀하신다(5).  다른 예수에게도(6), 전쟁에도(7), 민족과 나라가 맞서 일어나도, 지진과 기근이 들어도(8), 이런 일들은 반드시 일어나겠지만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기에 결코 속지 않는 것이 종말을 사는 자의 지혜라 하신다.  즉, 종말은 '이미'(already) 시작되었으나 '아직'(not yet) 종말은 아니다.  때문에 종말론적인 긴장이 필요하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바람이 좀 부는 것이 태풍은 아니듯이 종말의 여러 징후(sign)들이 하나 둘 시야에 들어오면 그것이 하나님의 예고편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리에 있기를 말씀해 주신다.



말세 스펙트럼(9-23) - 종말 예언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 매질하겠으며 …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 말하는 이는 성령이시니라
    (서로)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내 이름을 인하여 … 미움을 받을 것이나 …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기도하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이 일어나서 …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리라."

종말의 징조가 이리도 빨리 오리라고는 제자들도 상상치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이 승천하시고 시작된 사도행전 교회에 벌써 9-13절의 진통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말은 세상 끝 날의 어느 시점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고, 그것의 징후는 '환난'이며, '그 환난 후'(24)에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으로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시작된 종말에서 주의 재림까지 그 사이에 진행되는 환난의 때가 곧 말세에 해당하며, 그것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띈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느 한 징후가 곧 종말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말세를 살아가는 자에게 필요한 영성은 매 순간마다 성령님을 의존해야 하며(11), 환난이 인내를 낳는다 하신 말씀처럼(롬5:3)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이 필요하다(13).  또한 불가항력(不可抗力)적인 상황에서도 넉넉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종말을 살아가는 자에게 기도가 요청되며(18), 이런저런 신앙의 유언비어(流言蜚語)들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신앙의 정도(正道)를 걸어가는 영적 균형 역시 중요한 종말론적 영성이다(22-23).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것이 종말의 특징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6),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21),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22a) 비슷한 복음, 아니 다른 복음으로 세상을 더 혼미케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재림주'를 자처하는 자들이 70여 명이나 된다는 자료를 읽은 적이 있다.  이제는 예수 무당, 예수 점쟁이(철학관이라 부른다)들이 버젓이 활동하면서 '기독교인 환영'이라는 선전 문구를 앞세운다니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인자의 재림(24-27) - 재림 예언

   "그 환난 후에
    해가 … 달이 … 별들이 …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그때에 저가 … 자기 택하신 자들을 … 사방에서 모으리라."

재림의 물리적 환경은 이처럼 환난으로 넘실거린다.  종말의 상황은 이렇듯 혼돈과 피조물의 탄식으로 몸부림친다.  자칫 잘못하면 이런 외적 형편 때문에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영성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마치 태초에 "땅이 혼돈으로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창1:2)을 때에 빛으로 하나님이 찾아오셨듯이 주님의 재림 역시 새로운 창조를 이루실 것이다(24-25).  세상이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 있을 그때에 이 모든 환난을 끝내시는 분으로 강림하실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주님께 있으며 재림과 함께 그 평화는 시작될 것이다.  환난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내 의지로 피할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다.  예수를 믿어도 말세의 재난과 고난을 피할 수는 없다.  어쩌면 더 중요한 영적인 파고(波高)에 여실히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부터 영원히 자유하는 길이 열린다.  그것은 주님의 재림이다.  주께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는 날 환난은 끝난다.  이렇게 해서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며(13b), 천지사방(天地四方)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27).



"깨어 있으라!"(28-37) - 교훈들

   "… 아나니 … 알라 … 다 이루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주인이 언제 올는지 … 알지 못함이니라
    그가 홀연히 와서 …."

그날이 오고 있다.  주님은 잎이 난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처럼 종말의 여러 징조들을 보면서 재림의 날 또한 가까이 이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하신다(28-29).  그러나 집을 떠난 주인이 언제 올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러나 반드시 오기는 온다- 날짜와 시간은 알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부분이다.  안다와 알지 못한다가 교차하는 것 때문에 좀 어리둥절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재림이 있을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말이 아님을 분명히 하자.



부스러기 묵상

   "사람의 미혹(迷惑)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스스로 조심하라!
    너희는 삼가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모조품이 아무리 많아져도 진품의 가치가 추락하는 것은 아니다.
곰곰이 새겨볼 말이다 싶다.  가짜 예수, 위조 복음이 얼마나 난무하는 시대인가.  그럴지라도 성경은 수 천년이 지난 오늘까지 여전히 진리이며,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불변이다.  귀한 것일수록 유사품이 많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님이 이미 주신 진품은 알아보지 못하고서 말세에 대해, 주님과 성경에 대해, 그리고 교회에 대한 안팎의 여러 논란들이 난무하는 것은 결국 이것들이 다 모조품들의 장난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럴수록 진짜의 성취와 빛남은 더 분명해질 뿐이다.

가짜들에게도 능력은 있으며(22),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백성들을 가짜의 후예들로 만들려고 하는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될 것이다.  가히 피아(彼我)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이다.  자칫 적과의 동침도 할 수 있고, 같은 진짜끼리 서로 으르렁거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불신의 벽만 높아지고 결국 사탄의 전략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듯 환난은 외부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내적으로 전개되곤 한다.  과연 이를 어떻게 이겨내며, 또한 무엇으로 말미암아 "나중까지 견디는 자"(13)가 되어 구원을 얻을 것인가.  

현상들을 보는 것도 중요하고, 예고된 일들이 이런저런 모습으로 실현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나 다양한 징조와 징후들이라는 스펙트럼은 과연 누가, 어떤 식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성경과 일치시킬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어느 정도는 해석학적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각자의 주관적인 판관을 따라 이러쿵저러쿵(갑론을박) 할텐데 이 또한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님은 "주의(조심)하라!"시며, "깨어 있으라!" 하신다.  이것은 방법론이 아니다.  오직 삶이다.  종말의 변화무쌍한 스펙트럼을 통과해 가는 삶이라는 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징조들에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깨어, 주의' 하면서 벌어지는 환난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깨닫는 것이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의 바른 영성이다 싶다 :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14)  

다시 반복하지만 주님이 종말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종말 후까지를 미리 말씀해 주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 시대를 분별하고, 영계(靈界)를 통찰함으로써 불어오는 환난을 말씀으로 이겨내며 살기를 부탁하신 것 아닌가 싶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당신 안에서 저 미래의 종말을 보고 계셨듯이 나 역시 말씀을 통해 종말을 살아가는 영성의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어제보다 더 가까이 온 주의 재림, 동시에 더 치열해지는 종말의 환난들, 이 두 사이에서 내가 의지하고 따라야 할 것은 오직 말씀이요, 주님이시다.  나는 이렇게 종말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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