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 Ecclesiasters

2011/11/26 (09:40) from 203.236.129.130' of 203.236.129.130' Article Number : 26
Delete Modify 김충만 (bibleqter@gmail.com) Access : 3352 , Lines : 30
心碑묵상328(11.25)_새는 두 날개로 비상(飛上)한다(전7.14).
심비묵상(心碑默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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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두 날개로 비상(飛上)한다(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도서 7:14)

     하나님의 주권(전7.1-14)
     A “…이 …보다 나으니라.”(1-12)
       X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13)
     B “형통한 날 … 곤고한 날 …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14)


전도서 기자는 “…이 …보다 낫다”(A)에 들어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X)이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처럼 A(1-10)라는 쉼 없이 반복되는 일상 안에 전혀 다른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B), 보다 더 나은 것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것들까지도 버릴 것이 없이 합력하게 하신다. 이게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는 인간의 진짜 지혜다(11-12). 이것이 해 아래서 헛된 욕망과 허무의 늪에 함몰되어가는 것을 막아내는 진정한 힘이다.  

때때로 “…이 …보다 낫다”(A)는 일상에 전혀 다른 두 화음이 불협화음이 될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오늘 좋은 게 내일도 좋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오늘 슬픈 게 내일 웃음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 변화무쌍한 삶의 멜로디에 마음을 줄 수 없어 방황할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서 무엇이 진리이며, 정답인지 알 수 없어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처럼 살아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A(1-12) 안에 있는 B(14) 역시 하나님의 작품(X)임을 새삼스럽게 발견한다. 이것이 전도자 안에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지혜의 통찰이다. 결국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인간의 언행심사(言行心事)에 우선한다. 하나님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황(사건, 형편, 처지)을 통해서도 멋진 작품을 준비하시는 분이시다.

형통과 곤고가 이처럼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8.28). 지혜 밖에 있는 어리석고 헛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이 역설의 진리와 지혜를 결코 알지 못한다. 결국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발 가는 대로 언행(言行)하며 사는 자는 결코 ‘참는 마음’의 끝을 맛보지 못한다. 그만큼 지혜와 상관없이 자가발전(自家發電)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형통한 날만 만드시지 않으셨다. 때로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곤고한 날도 우리네 인생행로에 집어 넣으신다. 마치 조개가 모래 한 알을 품고 씨름하듯 한 순간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변주를 거듭한다. 하지만 알잖은가. 모래를 받아들인 조개가 그것을 품고 씨름하는 과정을 거치고, 또 견디어야만 영롱한 진주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영혼도 없고, 구원도 없고, 천국도 없는 한낮 미물에 불과한 진주도 그러할진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바 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랴!  

형통과 곤고의 변주는 우리네 삶을 영적 긴장감으로 충만하게 한다. 어느 것으로도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14b)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X)이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을 의존하고, 바라보고, 따르고, 맡기고, 믿고, 신뢰하며 그분의 뒤를 따라가는 것 아닐까. 그게 가장 안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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