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편 | Psalms

2011/12/10 (19:16) from 115.142.131.166' of 115.142.131.166' Article Number : 51
Delete Modify 김충만 (bibleqter@gmail.com) Access : 429 , Lines : 32
心碑묵상344(12.10)_현재의 대대에는 물론 미래의 대대에까지!(시90.1)
심비묵상(心碑默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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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대에는 물론 미래의 대대에까지!(시90.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시편 90:1)

     번역본
     우리말성경 : “주여, 주께서는 온 세대에 걸쳐 우리의 거처가 되셨습니다.”
     표준새번역 : “주님은 대대로 우리의 거처이셨습니다.”
     NIV : “Lord, you have been our dwelling place throughout all generations.”

     시간표
     A 인간의 시간 : ‘대대로’(1)
     B 하나님 시간 : ‘영원부터 영원까지’(2)


인간 시간의 ‘대대에’(1; A)와 하나님 시간의 ‘영원부터 영원까지’(2; B)가 쌍을 이루면서 유한한 인간과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간을 통로로 모세의 기도 안에서 대면을 한다. 과연 모세는 가나안을 앞에 두고 마무리될 자신의 시간을 두고 뭘 생각했을까? 아마도 모세는 애굽과 광야를 지나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영원한 거처(안식처)임을 잊지 않고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비록 120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거처로부터 분리된다 할지라도 ‘영원부터 영원까지’(B)라는 무한한 하나님의 시간 안에 보호를 받고, 그분의 거처(안식처) 안에 있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에 이런 기도를 시작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대대로’(A) 역시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시간이 아니기에 사람의 시간처럼 보이는 그때마저도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역사하신 때임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모세는 아마도 지난 40년의 광야행전이자 광야교회(행7.38)라는 기간 역시 오직 주 하나님만이 대대에 이스라엘의 거처이셨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이렇듯 광야의 시간표 안에 든 긍정과 부정의 이야기들 모두가 하나님이 안식처가 되어 주셨기에 가능했다. 돌에 각인할 만한 은혜와 영광 뿐만 아니라 물에 흘려보내 버려야 할 씁쓸하고 죄된 것까지, 그런 소용돌이치는 굽이굽이를 돌고 돌아 40년이라는 시간 모두를 하나님의 거처(안식처)라는 사랑의 품에 품어주신 하나님을 모세는 기도의 고백에 담아 올려드리고 있는 것이다.

내게 외가에 대한 기억은 없으나 본가에 대한 기억은 조모님 장례식을 전후해 희미하게 남아있다. 내가 3대째 신앙이라면 조부모는 기독교(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온 때부터 하나님을 섬겨온 가정이다는 뜻이다. 바로 그때로부터 “주는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셨”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먼 산도 가까이에서 보면 추할 수 있듯 우리네 가정도 예외는 아닐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선대(先代)의 때든 지금 내가 살아온 시간이든 간에 거처가 되어주실 수 없는 그런 때와 상황에서도 한결 같이 안식처가 되어 주셨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모세의 기도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대로 나의 기도와 신앙고백이 되기도 한다. 놀랍지 않은가. 더불어 나의 세대를 넘어 자식과 자식의 자식에 이르도록 -“영원부터 영원까지”(B)- 주는 우리의 거처이시며 하나님이시다. 모세가 그렇듯 현재까지의 대대에는 물론 ‘영원까지’로 펼쳐질 미래의 대대에까지 거처가 되신 주님이시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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