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 Genesis

2000/11/07 (13:23) from 210.219.129.234' of 210.219.129.234' Article Number : 34
Delete Modify 김충만 (thesermon@thesermon.org) Access : 4287 , Lines : 62
창13:14-18 | 롯 이야기가 주는 교훈들(2)



이혼하는 남자들

13장에서 아브라함 일행은 다시 벧엘에 정착한다.
롯 역시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1,3-4).  롯은 계속해서 아브람 곁에 있는 특권을 누린다.  즉, 아브람이 느끼고, 생각하고, 고백하고, 그러면서 성숙해 가는 신앙과 삶의 전 여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며 배울 수 있는 특권이었다.  롯은 그가 아브람을 따라 왔을 때 이미 모든 것을 아브람과 함께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는 아브람과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으며, 아브람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전 인생을 맡겼다.  아브람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 가는 지식에서 자라갔으며,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삶의 비밀들을 배우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끝나는 동거생활

사실 아브람은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약간은 불순종한 면이 있다.
그것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1절)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친척' 롯과 그의 식솔들을 데리고 갈대아에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왔기 때문이다.  왜 아브람이 롯을 함께 데리고 나왔는지는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은 이상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롯은 일찍 부모를 잃었고, 아마 아브람이, 특히 사라가 그를 부양하는 책임을 맡은 것 같다.

아브람은 조카 롯을 모든 면에서 책임진다.  무엇보다도 그의 신앙,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이 험한 나그네 인생을 승리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였다.  롯은 아브람을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믿고 사는 복된 삶인가를 도전 받았으며, 점점 성숙해 갔다.  그런데 함께 한 동거생활에 문제가 생겼다.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인가?  이것이 13장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참 이상하다.  그토록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12장의 결단을 내렸던 롯이다.  

물론 아브라함은 롯에게 먼저 "나를 떠나라!"(9)고 제안한다.  사실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서로 해어지게 되는냐는 점이다.  이것이 아브람과 롯에게 찾아온 영적 위기였다.    

첫째는, 소유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나그네 생활을 한다.  모든 고통을 함께 하며, 기쁨도 슬픔도, 보람도 축복도 함께 나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고생을 면하고서 살 만 한 때가 되었다.  아브람이 처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던 벧엘에 정착하게 된다.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로움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성경은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6)라고 말한다.  '소유' 때문에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끼리 서로 다투는 갈등을 경험한다.  어려울 때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좀 잘 살게 되고, 성공하고, 넉넉해지면 사람들이 조금씩 이상해진다.  이 때가 위기다 : 하나님이 주신 복이 감사가 아니라 갈등을 만든다면 그때가 위기의 때이다.  물질 관리에 실패하면 그때가 위기의 때이다.  인간 관계에 무엇인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가 위기의 때이다.

둘째는, 신앙이 소유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브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무장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아브람처럼 신앙과 소유가 적절하게 균형 잡혀 있는 성숙함을 배웠어야 했다.  아브람에게는 이 문제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롯은 소유와 신앙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에 실패한다.  아무 것도 없었을 때, 아브람을 의지해야 했을 때, 더욱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아브람과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부자가 되었다.  홀로서기를 해도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준비되어 되었다.  자신이 부양해야 할 식솔들도 많았으며, 이는 아브람의 도움이 아니어도,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이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것이 많은 현대인들의 문제의 핵심이다.  소유가 신앙을 이길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송가 495장 3절)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다.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너무 쉽게 하나님의 사랑과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린다.  이것을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 한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렇게 할 수 있나?"라고 거품을 머금고 이야기 한 사람도 장담할 수 없다.  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말 한 적이 없다. 난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나는 몸통이 아니고 깃털이다."  참으로 한심하다.

셋째로, 아브람에게 언약하신 약속의 땅을 버렸기 때문이다(12:5-8).  하나님은 이미 그들에게 12장에서 '가나안'을 약속하셨다.  롯은 이어지는 12장에서 아브람이 이 언약을 버리고 12장에서 내려간 것 때문에 당했던 혹독한 시련을 기억했어야 한다.  롯 역시 자신의 생명이 아브람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에 동일한 고생을 맛 본 것이다.  아브람은 이쯤해서 정신을 차린다.  그래서 다시 벧엘로 올라간다.  아브람과 롯은 애굽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서 신앙이 무엇인가라는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롯이 아브람처럼 행동하기로 작정한다.  그가 살아야 할 땅 역시 아브람에게 언약하신 가나안이다.  그런데 그는 약속의 땅을 버리고 요단 들을 지나 마침내 소돔으로 내려간다.  이것이 롯에게 찾아온 심각한 영적 위기였다.  롯은 하나님과 언약을 파기한 것이고,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보겠다고 선언한 구약에 기록된 최초의 탕자인 셈이다.

롯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를 생각한다.  이것이 소위 출세한 사람들,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착각이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 또한 역사가 주는 객관적인 교훈을 따르지 않는다.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통해 약속을 파기한 자에게 따르는 결과를 보여 주셨다.  그럼에도 롯은 자기는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과 멀어져가는 롯

롯은 실패한 일생이다.  아브람을 떠난 것은 그것의 시작이었다.  롯은 아브람과 물리적인 거리만 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만다.  이것이 문제였다.  롯은 요단 온 들을 택하고 평지 성읍들에 머물렀다.  롯은 하나님 없이 살겠다고 도전한다.  자신은 아브람처럼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한다(10).  

우리들 역시 롯처럼 선택하고 결정해 놓고 아주 잘 된 일인냥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롯이 놓쳐버린 것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겉과 속이 다른 곳이라는 것을 놓친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다.  처음에는 달콤한 솜사탕처럼 보인다.  그것을 붙잡기만 하면 성공할 것같고, 무엇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갔다.  하나님이 없는 곳이라는 것을 놓친다.  임박한 심판의 땅이라는 것을 놓친다.

롯은 급기야 소돔까지 이르렀다.  당시 소돔은 어떤 곳인가?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13)  이것이 롯의 실패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들이다.  보십시오.  의인이 죄인들에게 나아간다.  세상과 짝하여 살기 위해서다.  전도하기 위해서 선교적 사명을 띄고 그곳에 간 것이 아니다.  이 일은 후에 아브람에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 간다.  지금 롯은 자기의 목표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도, 어느 곳도 좋다라는 식이다 : 돈만 되면 좋다.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 나 잘되면 된다.

잘 아는 어느 목사님께서 하신 얘기가 있다.  반포에 사는 사람들 회개하라는 것이다.  복음을 위해서, 전도하기 위해서 반포로 이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8학군이다, 뭐다 해서 오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신 분 있나요?

  하나님! 반포의 영혼들을 위해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 내가 주의 이름과 복음을 위해 살 곳이 어딥니까.
  하나님! 그곳이 반포입니까?

바라보니 그곳이 앞으로 대단히 좋은 땅이 될 것 같고, 8학군이고, 강남이고, 거기에 보너스로 감사하게도 남서울교회도 있다고 하니 한 번 가 볼까!  아닌가요?  그리고 10여년이 흘러 이제는 반포의 매력이 별볼일 없어지자 하나 둘 신천지를 찾아 떠나는 것 아닌가요?  교회?  꼭 남서울만 있나, 목사들도 다 떠나는데 내가 무슨 교회 사찰이냐?

지금 롯이 그랬다.  롯은 영적으로는, 신앙적으로는 거지가 되어간다.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곳, 하나님의 복이 있는 곳에 그의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복음과 함께 살 것인가?  부족하지만 내가 쓰임 받을 곳은 어디인가?  롯은 '아니올시다'였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찾아오셨다.  하나님의 선택이다.  이것은 중요한 통찰이다.  그러나 롯에게는 그렇지 않으셨다.  또한 롯에게는 '언약'의 복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마침내 롯은 하나님 없는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많은 소유를 갖고 있고, 물이 넉넉한 곳에 있으며, 그리하여 보란 듯이 성공할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은 철저한 오해이다.  아브람과 롯의 인생에 있어서 그 분수령은 무엇인가?  13장 14-18절이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14)

이것이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핵심이다.  하나님이 롯을 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롯은 무대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하나님이 차지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람 편이셨다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14)  그렇다.  하나님께서 롯이 아닌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내게 그것을 네게 주리라."(17b) 말씀하신다.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는 아브람, 그에게 하나님은 그것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약속 이후가 있다 : "여호와의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18b)  아브람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다.  받은 바 은혜에 보답할 줄 안다.  이것이 영적 위기를 이겨내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럼 아브람을 떠난 후, 그 이후의 롯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는가?  다시 롯을 향해 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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