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 Esther

2000/10/19 (11:28) from 210.219.128.190' of 210.219.128.190' Article Number : 6
Delete Modify 김충만 (thesermon@thesermon.org) Access : 5686 , Lines : 78
에3:1-15 | 하만이 있다.
2000/07/20



 본문 관찰

 그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 고로
 하만이 …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아하수에로 왕 십이년 정월에 … 제비를 뽑아 십이월을 얻은지라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 저희를 진멸하소서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 하만에게 주며
 너는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 … 수산성은 어지럽더라



제3차대전 - 아말렉 vs. 유다인

2장과 3장의 시차는 4년이나 된다(2:16, 3:7).
에스더가 바사의 왕후가 된 이후 이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그녀가 왕후가 된 후 모르드개의 혁혁한 공로(2:19-23)가 궁중일기 안에 일단 감추어져 버린 것처럼 그녀의 왕후생활 역시 왕궁의 벽 뒤로 감추어져 있다(2:20).  그리고 에스더가 왕후가 된 목적이 무엇인지 역시 아직은 비밀이다.  일단 와스디의 풍파(風波)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 없이 수산궁은 그런대로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급부상한다.  그것은 하만 때문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모르드개 때문에 시작된다.  그리고 이 일로 한 사람에게서 유다인 전체로(6), 그리하여 "수산성은 어지럽더라."(15b)는 호외까지 발행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럼 모르드개가 뭘 어쨌기에 평지풍파(平地風波)가 일파만파(一波萬波)로 치솟고 있는가?  모르드개는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게 될까.  왜 그는 이렇게 언행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할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것이 베일(veil)에 감추어져 있다.



모르드개(Mordecai)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4a)

왜 이렇게 처신했을까?
그는 아마도 하만과의 일대일 대결이 민족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는 하만이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만가(家)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성경이 모르드개의 가문(2:5)과 하만의 가문(1,10)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두 가문, 좀 더 확장하면 두 민족 사이의 지난 역사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모르드개는 단순히 인간 하만을 싫어한 게 아니다.  

아하수에로왕 7년 10월에 에스더와 왕후가 되고(2:16,17), [하만대첩]의 초읽기가 왕위 12년 1월에 시작되는 것으로 볼 때(7) 에스더의 왕후 재임은 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셈이다.  비록 여전히 동족은 포로생활 중이지만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모르드개가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꼴 아닌가.  처세술치고는 어리석고 우매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모르드개의 우선순위는 달랐다.  그는 불편했지만, 어쩌면 모든 기득권을 다 잃을 수도 있는 바른 길을 선택한다.  그는 아직 끝나지 않은 아말렉 왕(아각)과의 영적 전투를 다시 시작하는 거룩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전투가 다시 민족 대(對) 민족으로 확전(擴戰)됨으로써 마침내 에스더서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  비교적 잠잠했던 수산궁은 소용돌이에 휩싸인다(15).  마침내 에스더서의 그림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로 보건대 모르드개는 세속에 동화되어 권력이 주는 빵 조각을 받아 먹으며 어떻게 든 이방의 땅에서 죽지 않고 생존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는 하나님이 없는 이방 세계의 공무원이라는 직장에서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마침내 선언한다.  그게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으로 돌아올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더 이상 하나님과 신앙 앞에 부끄럽게 살았다는 오점을 남기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죽더라도 성도로 죽기를 택한다.  그는 살아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죽은 자로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며 기생(寄生)하기를, 그래서 세상과 적당히 주고 받으면서 부끄럽게 공생(共生)하는 삶의 방식을 원치 않는다.  주님 말씀에 비추어 보자면 모르드개가 선택한 길은 '좁은 문'이다(마7:13-14).

모르드개가 나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는 신앙양식은 뭘까?  하나님이 모르드개로부터 내가 배우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은 자기의 자리, 신분, 쌓은 것, 가지고 있는 것, 명예, 자존심과 같은 것들을 지키려고 할 때 추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 사람이 세월이 가면서 순수성을 잃어 가는가 하면, 어느 땐가부터 하나님에다 세상의 것들을 섞어 버림으로써 거룩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하늘의 것이 아니면서 나에게 익숙해 진 것들로부터 결별하지 않으면 나는 이 시대의 모르드개로 살 수 없고,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됨의 능력과 의미를 드러내지 못하고 비겁한 속물로 전락하게 될 뿐일 것이다.  

모르드개는 이처럼 잠들어 있는 우리시대의 신앙을 깨우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감추어진 사람(hidden card)이다.  그가 숨어 있으면 혼란과 불안 속에 휩싸이는 일(15b)은 없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께 드러난 사람으로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세상 속에 감추어져 살기를 거부한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를 바사 안에 감추어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당당히 입문시키신다.  이렇게 살고 싶다. 이처럼 쓰이고 싶다.  나그네 인생길 아닌가.  한 번 뿐인 인생이 아닌가.  영원히 드러나기 위해 잠깐 세상 속에 감추어져 있기를 거부한 모르드개의 신앙 앞에 외소한 나를 발견한다.



하 만(Haman)

모르드개가 이처럼으로 언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각 사람 하만 때문이다(1,10).  아각은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사울이 싸운 적이 있는 아말렉 족속이다.  사울 당시 아각이 아말렉 족속의 왕이었다.  그런데 이 '유다인의 대적'(10) 아각 사람 하만이 바사의 정치 권력의 핵심 세력으로 급부상한 일은 무르드개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왜 이처럼 그는 아각(아말렉)을 싫어하는가?  이를 위해 잠시 -본문을 넘어서는 일이지만-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아말렉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존재를 거역한 첫번째 민족이다.  모세오경의 도움을 받아 보자.  '여호와 닛시'로 명명되는 이스라엘 최초의 전쟁사는 아말렉과의 전쟁(제1차대전)이었다 :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17:8,13-16)

이 일을 모세는 다시금 이스라엘에게 상기시키며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19)할 것을 명한다 :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신25:17-19)

마침내 이 일이 [기스의 아들]인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사울에게서 성취된다(제2차대전).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여리고 전투처럼 거룩한 전쟁을 원하셨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사울은 온전한 순종을 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씻을 수 없는 선언을 동시에 받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사무엘상의 도움을 받아보자 :

사무엘상 15장 1-3,7-9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아말렉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이 세상의 악(惡)의 샘플이다.  그런데 이 악이 아직도 버젓이 살아 있으니 모르드개의 심령이 편할 리 없었다.  모르드개는 [기스의 증손](2:5) 아닌가.  이미 모르드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사무엘처럼 꿰뚫고 있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사람의 힘이 무엇인가를 더 생각토록 하는 부분이다.  그는 출애굽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사울 시대나 바사 시대나 할 것 없이 형식만 슬쩍 바꾼 대적의 실체를 바라보는 일에 실패하지 않는다.

마침내 기스의 가문(모르드개)과 아각의 가문(하만)이 다시 한번 전투를 벌인다.  1월에 벌써 12월의 유다인 학살을 계획(7)한 하만은 1월 13일에 왕의 재가를 얻어 온 바사에 12월 30일에 있을 유다인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12-15).  하만은 아각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결의를 보인다(6).  이처럼 사탄은 이름(상표, 모양, 형식)만 바꾸어서 다시 도전한다.  공중 권세 잡은 자도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음을 본다.  사탄은 예나 지금이나 성도들을 공격하고 할 수 만 있으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내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부스러기 묵상

마침내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가 오고 있다.
모르드개와 하만의 조우는 마치 가드에 '약간' 남겨 놓았던 아낙 사람(수11:22)이 거대한 골리앗으로 자라 이스라엘을 능멸(삼상17:4,23)하였던 것에 비유된다.  이처럼 진멸했던 아각의 후손(삼상15:4)이 바사의 유력한 지도자로 자라 또 다시 이스라엘을 모독하며, 이번에야말로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형국(제3차대전)이 마침내 바사의 한복판에서 시작되었다.  영적 전쟁은 시작되었고, 이 일은 모르드개가 사울의 후예가 되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제1차대전(출17:8-16), 제2차대전(삼상 15:1-3,7-9)에 이어 마침내 제3차대전이 예고된 셈이다(13).

  "수산성은 어지럽더라."(15a)

과연 이방의 땅에서 우리 성도들이 거대한 제국의 세력을 맞아 승전보를 전해 줄지 3장에서부터 긴장을 맛본다.  이제 유다인과 바사인, 영적 군사와 사탄의 부하, 성도(聖徒)와 세인(世人) 사이의 구분이 시작되고 있다.  함께 살지만 그들에게 속할 수 없는 신분의 사람들이 갑자기 시작된 사형선고 앞에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3장은 이 싸움의 결론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들 모두가 과연 어떻게 이 전쟁을 치루어 갈 것인지 4장이 전해주는 소식을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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