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 Esther

2000/10/19 (11:38) from 210.219.128.190' of 210.219.128.190' Article Number : 13
Delete Modify 김충만 (thesermon@thesermon.org) Access : 4541 , Lines : 60
에8:15-9:4 | 기뻐할 이유 있다.
2000/07/27



 본문 관찰

 모르드개가 … 큰 금면류관을 쓰고 … 왕의 앞에서 나오니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그 날로 경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십이월 십삼일은 … 유다인들이 … 자기를 해하고자 하는 자를 죽이려 하니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도에 퍼지더라



소금과 빛

아직 두번째 조서가 실행되지 않았을 때이다(8:9, 9:1).
그러나 유다인에게는 이미 두번째 조서가 반포되었고, 그래서 첫번째 조서가 무효하다는 것을 알고 믿었기에 그것만큼 오히려 즐거워한다.  아직 12월 13일이 9개월 여 남았지만(8:9) 유다인의 모습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으로 회복되어 있다.  이것이 성도의 모습 아닌가.  이제 모든 어두움은 물러갔다.  고난을 지난 이후에 맞이하는 구원의 기쁨이기에 더 가슴으로 느껴지는 행복이 보인다.



"모르드개가 … 왕의 앞에 나오니."(8:15a)

모르드개는 자기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귀중한 존재였다.  
수산성(8:15b) 사람들에게 모르드개는 즐거움과 기쁨이 되고 있다.  유다인(8:16)에게는 영광과 존귀함이 더 해 지고 있으며, 본토 백성(8:17b)은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바사의 모든 공직자들에게 권위가 있었으며(9:3), 왕궁에서도 마찬가지였다(9:4a).  하나님은 그를 바사 127 도에 명성 있게 하셨다(9:4b).  그는 요셉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이름은 달라도 삶의 양식은 동일하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의 특징이 아닌가.

한 사람이 바르게 서면 모든 사람을 축복할 수 있다는 원리가 에스더서에도 분명하게 발견된다.  나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인가를 생각한다.  모르드개는 성도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이방인에게도 칭찬을 듣는 사람으로 승리했다.  그는 분명 소금과 빛으로 살았다.  우리시대에도 모르드개와 같은 공무원이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고백을 그의 일터에서 실현해 내는 사람, 바로 이처럼 모르드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요구되는 절박한 시대를 살아간다.  자기 한 사람의 성공으로 끝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이 땅은 지금 기다린다.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모르드개와 같은 평신도가 많이 세워지기를 말이다.  



"아달월 곧 12월 13일 … 그 날에."(9:1b)

나에게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이유, 충분히 있다.
나 역시 아직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미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시민이라는 믿음이 고통과 고난 속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기쁨, 그것의 비밀을 따라 살도록 만든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동하는 9개월 기간이지만 이미 승리한 자로 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록 넘어짐이 있고, 실패가 있고, 좌절이 있어도 두번째 조서가 유다인('나')을 주장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은 넉넉히 오늘의 그것들을 감당하고도 남도록 한다.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은 왕의 조명을 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그 날에."(9:1)

오늘 나의 삶의 현장 역시 아직 12월 13일을 기다리는 9개월을 통과하는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유다인들이 바로 그 날을 기다리며 살고 있지만 저들의 삶의 터전이 이방의 수산이듯이 나 역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재림으로 시작되는 구원의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지만 여전히 삶의 영역은 이 세상이라는 점을 조용히 묵상해 본다.  그러나 유다인과 내가 동일한 점은 비록 세상에 사나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그 날이 옴을 믿는 만큼 이 세상의 방정식을 이기며 살아가게 된다.  세상을 거꾸로 사셨던 주님처럼 살아가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축복을 맞이하는 것이요, 그래야만 영광의 부활이 있다(빌2:5-11)는 점을 잊지 않아야겠다.  하나님은 고난을 주시지만 영광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나 또한 고난에서 영광으로 나아가지, 영광에서 시작하여 고난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다.  영광에서 시작했던 하만은 파멸로 끝났다.  오늘 본문의 모르드개의 영광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의 백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 역시 사망(죽음과 저주)의 포로에서 시작하여 나그네 길을 걸어가는 노정(路程)에 있다.  "이 땅에서는 고난도, 그러나 저 땅에서는 영광을!" 나는 믿는다.  그러기에 지금 영광과 존귀함만을 탐하기에는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언제나 진리 편에 서서, 생명을 걸고, 고난도 기꺼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고백과 함께 하나님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그 이후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영적 통찰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정말 기뻐할 이유가 분명히 있는 아침이다.  



부스러기 묵상

12월 13일은 심판과 승리가 동시에 성취되는 날이다.  
그 날은 심판의 날(8:9-14)이자, 동시에 승리의 날(8:15-9:4)이다.  유다인처럼 그 날을 소망으로 맞이하기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라고 고백한 바울의 동창생으로 서기까지 가슴 벅찬 사명을 두 무릎으로 다시금 붙든다.  진정 모르드개가 꼭 부럽지만은 않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나 역시 그의 곁으로 부르실 것을 믿으니까.  

2장 5절부터 보여준 모르드개의 삶처럼 한결같이 살아가노라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8장 15절 이후의 복을 부스러기로 주시겠지 싶다.  신나는 아침, 이 기쁨과 기대를 가지고 기도 앞으로 나아간다.  8-10장의 승리와 영광은 4-7장의 흔들림 없는 신앙하는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희망의 빛이 없던 참담한 좌절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 그걸 지키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래서 승리는 더 없이 값지다.  

악몽은 3개월로 종료된다(3:7,12 → 8:9).  그리고 희망은 9개월 동안이나(8:9 → 9:1), 아니 소망과 영광은 계속된다.  눈물은 짧게, 그러나 기쁨은 길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복의 모습이다.  사탄은 자신의 계획이 1년 동안이나 유효할 줄 알았다(3:13).  그러나 이것은 하만과 그의 일당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사람은 죄를 계획하지만 하나님은 의를 이루신다.  그러므로 모르드개처럼 절망의 입구 앞에서도 희망의 출구가 열릴 것임을 믿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니까.  그분의 섭리는 언제나 유효하니까.  기뻐하며 살 이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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