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 Esther

2000/10/19 (11:37) from 210.219.128.190' of 210.219.128.190' Article Number : 12
Delete Modify 김충만 (thesermon@thesermon.org) Access : 4729 , Lines : 63
에8:1-14 | 종말이 오고 있다.
2000/07/26



 본문 관찰

 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다시 … 하만이 … 한 악한 꾀를 제하기를 울며 구하니
 그 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모르드개의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조서에는 … 저희로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저희를 치려 하는 자와 그 처자를 …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곧 십이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



새로운 일

하만과 모르드개의 영적 전쟁은 끝났다.
'기스의 증손'(2:5)인 모르드개와 아말렉 아각왕의 후손인 하만의 만남은 처음과 끝이 완벽하게 역전되어 막을 내린다.  이스라엘 vs. 아말렉(출17:8,13-16, 신25:17-19), 사울 vs. 아각(삼상15:1-3,7-9), 모르드개 vs. 하만(2:5-8:2)의 대결구조는 모르드개의 승리로 완결된다(2).  사탄은 이처럼 창세 이후 -그러나 에덴에서는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실패)을 기록하는 창세기 3장에는 15절이 있다- 결정적인 전투에서 모두 패하였다.  지금도 사탄은 계속해서 패배중이다.

'이미' 실패로 끝났으나 '아직' 오지 않는 종말까지 이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벧전5:8) 찾으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승리를 도전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사탄은 이 일을 사명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도 사탄은 현대의 新 하만으로 위장하여 끊임없이 우리('나')를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의 역사와 섭리에 반기를 드는 그 누구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오늘날에는 하만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교회 안으로까지 들어와 거룩한 공동체를 위협하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한다는데 있다.  하만은 이방의 수산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와 교회의 사명을 성취해 나아가는 소명 사역을 발목 잡고 사람의 생각과 계획이 집행되고 반영되는 쪽으로 교회를 이끌어가려고 시도한다.  

하만은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듯이 오늘날도 하만類의 사람들 역시 그처럼 행동하고, 결정하고, 말하고,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일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하만이 인간의 계획과 하나님의 섭리의 대역전(大逆轉)을 결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듯이 이런 류의 사람들 역시 자신이 하만처럼 끝날지도 모른다는 점을 불행하게도 모른다.  

하지만 끝내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지 않고, 회개의 기회를 거부하면 그가 목회자든 평신도든 그 누구에게도 성역(聖域)은 없다(마6:21-23, 25:41-46).  하만의 공헌(?)은 불행하게도 이것을 증거해 준 것뿐이다.  한편 모르드개는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 편에 서서 묵묵히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살아가면, 그러니까 신약 식으로 말하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a)는 원리에 충실하면,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b)는 말씀의 성취라는 급류를 타는 삶의 현장으로 인도함을 받게 된다는 것을 증거해 준다.



12월 13일

모르드개의 승리는 동시에 하만의 패배를 의미한다.  
모든 일은 언제나 이 두 국면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날은 원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령(3:12-15, 3-6)을 내린 날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날을 구원의 날로 바꾸신다.  에스더서의 시계(視界)는 아하수에로왕 12년이다(3:7).  하만을 통해 공포된 제1차 조서는 그 해 1월 13일에 반포(3:12)되어 몇 일 어간에 7장까지 진행되고 만다(4:1,16, 5:1, 7:1).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해 3월 23일에 모르드개를 통해 제2차 조서가 공포(9-13)되는 과정과 그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해 준다.

그렇다면 하만의 세력이 패망하고 약 두 달(月)이 지났다.  그러나 하만은 죽어 없지만 그가 남긴 제1차 조사는 아직 유효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는 유다인들로서는 그냥 시간이 지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바로 여기에 사람의 지혜까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절묘한 합력이 있다.  

하만의 뒤를 이어 모르드개가 왕을 모시는 최고 수반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이미 왕후와 함께 유다인이며, 그것도 왕후의 사촌이라는 점이 밝혀졌다(1-2).  그러나 왕은 1월 말 이후부터 3월 23일까지 약 두 달 동안 모르드개를 지켜보았다.  권력은 살아있는 생물(生物)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모르드개는 아하스에로왕의 기대에 부응하여 무리 없이, 사사로운 감정과 이기(利己)에 치우치지 않고 국정(國政)을 균형 있게 감당했다는 뜻이 된다.  하만 같지 않은 사람으로 왕에게 신뢰를 주었고, 여기까지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하모니를 이룬 점이 아름답게 비춰진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왕 제2차 조서(9-13)를 위해 울며 구한 소원(3-6)이 하만 때처럼 즉각 시행되지 않는 점을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이제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이미' 다 되었으나 '아직' 그 날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의 승리도 그렇다.  하나님은 이미 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승리하셨다 :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그 주님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마28:20).  



부스러기 묵상

온 유다인이 이처럼 이미 승리와 함께 12월 13일을 맞이하고 있다.
이처럼 나 역시 이미 승리한 주의 자녀로 영광과 축복의 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날은 동시에 "세력을 가지고 저희(하나님의 자녀)를 치려 하는 자."(11b)에게는 저주와 심판의 날이다.  세상에는 여전히 이 두 그룹이 공존한다.  마치 알곡과 가라지처럼 말이다(눅3:17).  그 날이 오고 있다.  그 날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 날을 감히 그 누구도 거스릴 수 없다.  아,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 날을 기대하며, 기다리며, 기뻐하며, 기도하며 맞이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사실 모든 상황이 긍정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하만대첩]은 유다인의 승리로 끝이 났다(7장).  이쯤 되면 보통은 다들 자축하며 그 다음 목표를 잃어버리고, 또한 팽팽하던 긴장감은 사라지고 만다.  3장의 위기를 극적인 승리로 바꾸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에스더 8장의 분위기는 그렇지가 않다.  하만의 승리 예측은 '6일천하'(3:12, 5:1,8, 7:1,10)로 끝나고, 유다인의 아픔은 3개월로 문을 닫고(9, 3:12), 그리고 온 유다인과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이미' 얻은 승리를 9개월 동안 누리도록 하신다(9, 9:1).

승리자 하만에게는 4장이 없었고, 실패자 유다인에게는 4장이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이 구도는 깨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7장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하나님은 3장의 위기를 4장으로 넘어서는 사람들을 주목하셨고, 그럼에도 계속되는 고통과 삶의 문제를 그대로 품고서 묵묵히 자기들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표에 충실했던 유다인들을 주목하셨다.  그리고 고통을 6일로 끝나게 하신다.

종말은 오고 있다.  불행하게도 하만만이 이를 모르고 있었다.  그걸 몰랐으니 자기가 달릴 25m나 되는 장대를 자기 손으로 준비하는 어리석음을 끝까지 신뢰한 것 아닌가.  에스더서를 통해서 배우는 또 하나의 진리는 '아직' 오지 않은 12월 13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가 하는 하나님의 질문이고, 또 거기에 답하는 나의 응답이다.  

유다인들처럼 맞을 것인가, 아니면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 하는 자'(11)로 맞을 것인가.  나에게는 어떤 그림으로 종말이 오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미' 시작되었으면서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불현듯 임하게 될 그날을 바라보는 나에게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하나의 나침반이다.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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