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 Ezra

2003/11/01 (22:58) from 61.105.101.177' of 61.105.101.177' Article Number : 2
Delete Modify 김충만 (thesermon@thesermon.org) Access : 1460 , Lines : 65
(11/01-02) 스1:1-11 | 여호와의 전(殿)을 건축하라!
2003/11/01-02



 본문 관찰

 고레스의 귀환령(1-4)
   여호와께서 …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이스라엘의 귀경(5-11)
   이에 …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고레스 왕이 여호와의 전 기명을 …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세스바살이 그 기명들을 다 가지고 왔더라



이사야 45장 1-7절
  
   분열왕국에서 포로기까지
   사44:28-45:7(사44:24-47:17)
      → 렘25:11-14, 29:10-14
          → 단6:28, 9:1-11
               → 스1:1-4(스룹바벨―학개/스가랴―에스더―에스라)
                   *( )는 포로기 이후에 활동함

바사제국의 고레스(B.C. 559-530) 왕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그는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고, 바벨론을 정복하게 하신 분이 누구시며, 그분이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다(2).  그리고 그것을 아는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3).  그것도 자원함과 즐거운 마음으로 매우 풍성하고 구체적으로 명하고, 또 이루어지도록 격려하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면서 말이다(4,7-8).  



고레스의 귀환령(1-4)

하나님은 섭리하시고, 거기에 고레스는 쓰임 받고, 이스라엘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재건과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는 사명을 회복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었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  비록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불효자들이지만 어찌할 것인가, 그래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영원히 단절하고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하나님도 그러실 수 밖에 없는 분이실까.  하나님은 고레스라는 대리인을 내세워 이 일을 은밀하고도 분명하게 진행해 가신다.

고레스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이방나라의 왕이다.  그런데 그는 지난 이스라엘의 왕조시대 때의 열왕들에게서도 찾기 어려운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결정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다.  고레스는 다니엘을 알고 있었다(단6:28).  그리고 다니엘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예언, 즉 70년 바벨론 포로기를 마치고 이스라엘이 다시 고토(故土)로 돌아올 것을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다(단9:1-11).  그의 언행(言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의 추론(상상)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하나님은 당신의 이러한 말씀들을 성취하시기 위해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1)셨고, 또한 다니엘은 이를 고레스에게 알려주었음이 분명하다.  마침내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세계의 패권을 잡게 되자 다니엘은 이를 이루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며, 당신이 이런 영광을 얻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음을 분명하게 고레스에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귀경(5-11)

그 옛날 出애굽한 이스라엘이 생각나는 분위기다.  하지만 바로와 고레스가 다른 역할을 하듯이, 出애굽과 出바벨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서로 다르다.  어떻든 고레스는 물론 바사의 백성들 역시 “도와주고” 또 성전재건을 위해서도 예물을 “즐거이” 드리는(4,6), 뿐만 아니라 성전에서 사용하던 기물들까지 다시 가져가도록, 이런 일련의 일들이 명하여지고 또 그대로 행하여지게 된다(7-11).

참으로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다.  出애굽하던 조상들은 바로가 어쩔 수 없이 허락한 터라 홍해를 건너기까지 얼마나 가슴조리는 발걸음이었던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모든 것이 자유롭고, 넉넉하고, 평안하다.  주어진 복(福)을 기쁨으로 받아 자원함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즉, 잠시 머물던 이 땅을 뒤로 하고 하나님이 원래 주셨던 언약의 저 땅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방해는 아무 것도 없다.  있다면 오직 자신들의 마음이 떠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남을 것인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 이것이 유일한 장애물이다.  어느덧 이방의 땅이 익숙해져 버렸고, 뿌려 놓은 여러 삶의 터전들이 더 먼저 고려되는 처지가 되었고, 어떤 일을 만날지 모르는 머나먼 길을 떠나는 것은 물론 바벨론의 이주정책 때문에 고토를 선점하고 있는 자들과의 물리적 충돌 또한 만만찮았으리라.  어쩌면 이것이 소수의 사람들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장도(長途)에 오르게 하지 않았나 싶다.  

어찌됐든 이유야 가지각색이었을 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남은 자와 떠나는 자, 이 두 부류다.  생각해 보면 모두가 다 고생하고 싶지 않았겠지.  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올라가 보면 이곳이든 저곳이든 다 상관없다고 생각한 자들은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자신의 죄라는 인식이 없던 자들이었을 것 같다.  이들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역사와 자신들을 드려다 보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이야 말로 현실주의(인본주의)자들이다.



부스러기 묵상

이제 남은 것은 회복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온 이스라엘을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도록 심판을 행하셨다.  그러나 심판이 끝이 아니라 마침내 긍휼을 입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회복의 아침이 밝아왔다.  포로기라는 쓰라린 아픔의 끝,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다시 새롭게 시작될 하나님의 이야기에 대한 희망이다.  이것은 70년 포로기를 마치고 다시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하심에서 시작된다.  

마침내 제2의 出애굽이 시작된다.  하지만 出바벨론은 포로기의 모든 백성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지도자들(5a, 2:1-2)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5)들이 제1차로 돌아왔다.  2장에서 알듯이 그 수는 42.360명이었다.  실로 소수의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이미 7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 땅에 정착을 하고 뿌리를 내렸는데 이를 다 훌훌 털고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다시 고토(故土)로 돌아가 자신들의 소중한 모든 것을 드려 성전을 재건하고, 동시에 삶의 터전을 새롭게 일구는 것, 이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만이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삶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미련 없이 일어설 수 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은혜의 분깃들은 “하나님께 감동을 받…은 자”(5)들만이 얻고 또 누릴 수 있다.  

과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고 그곳에 남은 자들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위해 나그네의 길을 걸어간 자, 이 둘의 결정(선택)은 또 다시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새롭게 시작될 회복의 시대, 과연 누가 주역이 될 것인가.  순간의 안위와 안정을 위해 포로의 땅을 택한 자들과 다시 시작될 새로운 삶을 하나님으로 더불어 열어가기로 결정한 자들, 이들이 펼쳐갈 삶의 쌍곡선을 따라 에스라서 묵상여행을 떠난다.



Backward Forward Post Reply List